
겨울비 (2009/양창근)
6.8
01. 알아
02. 겨울비
03. 조금 힘드네요
04. 라랄라
05. 노을
양창근과는 전혀 안면이 없다. 사적인 친분은 물론, 그의 공연을 관람한 적도 없다.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 라는 질문에 변명은 준비되어 있다. 내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입대했다.) 그럼에도 음반을 들으면서 괜히 그가 궁금해졌다. '사회'에 있다면 만나보기라도 해볼 텐데, 이미 입대했으니까. 그래서 그가 개설한 자신의 팬클럽에 찾아갔다. 클럽 이름은 '양창근입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 사진첩을 열었는데, (훈련소 들어가기 전) 고향집서 머리를 깎으며 찍은 사진이 올라와있다. 왼쪽 머리는 삭발하고, 오른쪽 머리는 아직 깎지 않은 모습.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ㅋㅋㅋ"가 길게 찍혀있는 댓글이 유난히 눈에 띈다. 꾸밈없는 모습이 절로 미소를 띠게 하는 것, EP에서 받은 느낌 그대로이다.
우리는 어떤 클리셰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소년의 것 같이 여린 목소리, 보드라운 포크 기타 스트로크, 서정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노랫말, 그리고 참 듣기 좋게 뽑아낸 팝 멜로디. 그 본격적인 시작이 정확히 누구, 였다라 확정짓기는 조금 어려운 감이 있지만 좌우간 2000년대 초반, 재주소년의 첫 음반이 발매된 그 근처로 하여 어떤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정도는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때로는 소년이 소녀로 전치되기도, 포크 기타가 전기 기타로, 혹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로 전치되기도 했지만, 또한 의외로 큰 변화 없이 트렌드가 유지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적게 잡아도 그 발원부터 벌써 5년을 훌쩍 넘겼기에 요새는 다소 지루해진 것은 당연하달까. 그런 와중 발매된 양창근의 [겨울비] EP는, 말하자면, (트렌드 아래) 가장 늦둥이로 난 자식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막내쯤 되겠지.
EP의 포문을 여는 <알아>부터 마지막 트랙 <노을>까지, 우리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겠다. 양창근은 시종 좋은 멜로디를 밝은 표정으로, 살가운 스트로크에 맞추어 불러 나간다. 노랫말은 또한 어떠한가; "기억해 나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네 얼굴을 / 떨리던 내 가슴을 / 알아 다신 돌아오지 않을걸 / 우리 함께했던 시간도 / 날 떠나버린 네 마음도"(<알아>)라든지, "우산 하나를 둘이 쓰려니 / 자리는 당연히 좁을 수밖에 / 비를 맞는걸 싫어하는 넌 내곁으로 몸을 붙여 / 함께 비를 피했지"(<겨울비>)라고.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의 아기자기한 감성. 그렇다. 그 전형을 양창근은 모범생처럼 잘 따른다. 모범생처럼 잘 뽑아낸 멜로디, 감정의 과잉으로 치닫지 않고 적절할 때 컷 하는 센스, 소박하면서도 단정한 어레인지. 여기까지는 모두, 전형에 속한다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어떤 이는 또 동어반복인가, 라며 툴툴댈지도 모르겠다. 근거 없는 툴툴거림은 아니겠지. 클리셰란 본디 지루함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니. 그러나 EP를 찬찬히 감상할 때 드는 기분은 '지루함'보다는 '(그럼에도) 신선함'에 가깝다. 범람하는, 정확히는 범람했던 예의 그 지루했던 클리셰들에 비하여 양창근의 작업은 신선하다. 이를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어떠한 악기가 쓰였거나, 쓰이지 않았거나, 노래의 작법이 다르거나, 이런 종류의 차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아주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 가깝다. 단서는? 이를테면 <알아>에서 살짝 불안해 보이는 하모니라든지, <겨울비>에서 다소 부족해 보이는 호흡이라든지, <조금 힘드네요>에서 미묘하게 흔들리는 가성 같은 것들, 말하자면 결정적이라기보다는 되려 아주 작고 초라한 것들이다. 좋은 레코딩 장비를 갖추지 못하여, 여유 있게 테이크를 가지 않아, 혹은 다소간은 양창근 본인의 역량 부족으로 생기는 이런 종류의 미미한 '노이즈'들은 그 자신의 곤궁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오히려 '진솔함'으로 다가온다. 요컨대, 전형의 덫을 잘 헤쳐 나온다. '소년적인 감성에 소구하는 포지셔닝'이 아닌 '소년 그 자체'의 음성으로 노래하기에 양창근의 [겨울비]는 신선하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원형(元型)을 만나는 듯하다. 이는 참 기분 좋아지는 일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다보니, 어느새 양창근이 입소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간다. (직접 차린 그의 팬클럽 메인 화면에는 "창근이 군대가요 5.26"이라는 글귀가 큼지막이 쓰여있다.) 그가 육군인지, 그렇지 않은지, 병 구분은 어떻게 되는지 같은 디테일한 정보에 대하여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곧 훈련소가 끝나면 자대에 배치를 받고, 또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주소가 생기지 않을까. 혹여 그의 소식을 아는 이 있다면 글 밑에 댓글로 주소를 남겨주면 감사하겠다.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편지란 것이 꽤 큰 힘이 되지 않나. 간만에 사심 없이 좋은 노래를 들려준 이에게, 이에 나름 감동을 받은 이라면 그깟 편지 한 장 크게 어려운 일 아닐 게다. 이참에 나도 간만에 편지나 한 장 써볼까 생각하기도. (단편선/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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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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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근 2009/07/03 15:24 | M/D | Reply
안녕하세요 양창근입니다ㅎ.5주훈련받고 오늘 퇴소하여 인터넷하던중에 감사한 리뷰를 읽었네요^^ 전 상근예비역이라서 이제 부대가아닌 집에서 출퇴근하며 근무를한답니다.집으로 편지를 보내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지만 번거로우실까봐 그냥 클럽에 글로남겨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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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와나 천재드럼 2009/07/04 18:40 | M/D | Reply
창근씨 노래 좋아요, 분위기만 맞으면 조인트공연을 하고싶을 정도.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이란 수식이 딱 어울리는 친구입니다.
비올 때, 혹은 밤에 혼자 조용히 독서할때, 사색할때 귀를 적셔줄 감미로운 노래들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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